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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되지 않은 생각

202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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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1일 정도였을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회색 후드집업에 청바지를 입고 내 몸통만큼이나 커다란 스포츠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서 수원역 2층 출구에 서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뇌에 도착하기도 전에 몸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칼바람에 모든 감각이 곤두섰다.

찬바람 때문이었을까?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감보다 낯설고 거대한 세계를 처음 만난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수원의 3월은 남도의 겨울만큼이나 차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2005년 처음 느껴본 3월의 수원은 겁이 많은 시골 청년을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

지금은 2022년이고, 겁이 많던 시골청년은 어느새 서른 후반의 아저씨가 되어있지만, 무언가 새로운 환경에 놓여질 때마다 불현듯 그날의 수원역과 로터리를 돌고 있는 수많은 차들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나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지구가 자전을 하는 까닭일까? 나의 매일은 컴퍼스에 단단히 고정시킨 연필처럼 같은 모양을 그리며 돌아간다. 가끔은 고정나사를 빼버리고 싶기도 하다. 어김없이 다가오는 월요일 오전 6시 30분의 알람은 주말 사이에 잠시 풀어둔 고정나사를 단단히 조여 맨다.

새로움은 삶의 활력을 준다. 매일 차를 타고 지나치던 거리를 자전거로 달릴 때, 가끔 동네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느지막이 집을 향해 걸어갈 때, 그 공기의 이질감은 잊었던 기억을 조용히 끄집어내기도 한다. 예닐곱 살 즈음 의성 시골길에서 아빠가 잡아주던 두발자전거를 타던 기억들. 늦은 밤 대학 도서관 옆 자판기에서 친구와 앉아서 "역시 담배엔 밀크커피, 아니 조지아 캔커피지."라며 나누던 대화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초행은 아니라 두려움은 어느 정도 걷어냈다.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다가도 피곤함에 이것저것 다 모르겠고 호텔방에 얼른 들어가 씻고 자고 싶어 진다. 어쨌든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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