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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되지 않은 생각

20220620 더위와 맞서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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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고 싶었다. 날이 흐렸지만 주말 내내 조금씩 자란 아랫배를 견딜 수 없었다. 아침 출근길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다행히 구름이 제법 드리워져 있었고, 날은 습했지만 맞파람에 적당히 견딜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나서부터 회사를 한 바퀴 걷고 있는데 숨이 턱턱 막혀왔다. 더위를 잔뜩 머금은 무거운 습기가 폐포까지 점령한 것 같았다.

 

일을 하고 있으나, 일을 하는 내 모습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회사 다이어리와 아웃룻 일정표에 이것저것 미결을 적어두었지만, 지난 주부터 같은 내용을 매일 적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대체 어디서 내 보람됨을 찾아야 할까? 진급, 급여, 워라밸, 동료, 아니면 원가 계산에 대한 자부심? 일을 잘해서 받는 인정?

 

'더위를 먹었나?' 찰나의 시간동안 잡생각이 온 정신을 사로잡았다.

 

오후 세시반부터 소맥이 마시고 싶어졌다. 남광장 근고기집에 가면 술을 살짝 얼린 상태로 서빙을 해준다. 많이 마시면 다음날 배탈이 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오늘같이 더운 날엔 슬러쉬같은 소맥 한잔을 들이키고서 멜젓에 살짝 담근 삼겹살을 먹고 싶다.

 

감기에 걸린 아내와 첫째의 소식을 접하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제법 힘이 들었다. 내리쬐는 더위에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지나가는 길에 북광장을 지나친다. 미처 들이키지 못한 소맥이 생각나면서 목이 갑갑해진다.

 

집에 돌아왔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로 돌아왔지만 첫째며 둘째며 그래도 아빠라고 와서 반겨주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몇 년이 지나면 "아빠 땀냄새나. 저리 가!"라고 소리칠지도 모르고, 그마저도 귀찮고 싫어져서 방에 틀어박혀 인사도 하지 않을지도... 이런 생각에 서글퍼지다가도 오늘이 내 아이들과 가장 즐거운 한 때라고 생각하니 좀 잘해줘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두 아이를 씻기고, 나도 씻고, 피자를 한판 시켜먹었다. 이제는 피자 라지 한판에 사이드로 스파게티 하나. 많이 먹어라, 애기들.

 

더위를 먹었는지 하루종일 주저리주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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